| 정희진 〈정희진처럼 읽기〉 - 사유와 통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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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고 있는 평화는 논쟁이 없고 다툼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하지만 정희진 작가는 문제를 제기한다. 다툼이 없다고 평화로운 상태인가? 진정 모두가 안정적이고 만족한 상태의 평화가 가능한가? 평화의 어원은 로마신화에 등장하는 평화의 여신, 팍스(Pax)다, 한자로는 범(汎)에 가깝다. 그러니 무서운 말이다. 평화는 가장 당파적인 개념인데 보편적인 가치처럼 인식된다. 일단 평(平) 자체가 일반화된 폭력을 뜻하는 글자다. 평등(平等)도 마찬가지. 평등 실현보다 더 중요한 것은 평등의 기준이다. _186쪽 깊이 고민하지 않았다. 표면적으로 보이는 고요한 상태를 평화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눌림과 압박으로 인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는 상태는 평화가 아니며 약자가 인내함으로써 가능한 상태는 평화가 아니라는 저자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오히려 누구든지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자유로운 논쟁에 참여할 수 있는, 소위 시끄러운 상태가 평화라는 말에 격한 공감을 하게 된다. 객관이란 무엇인가? 저자는 객관을 권력자의 주관성이라고 했다. 언어의 세계에 중립이 없다고도 했다. 하여 객관은 엄밀히 말하면 언어도단이며 존재할 수 없는 단어이다. 객관성은 권력자의 주관성이라는 사실을 모르는가? 익명성이라는 사실을 모르는가? 익명성은 가장 무서운 서명이고 객관성은 가장 강력한 편파성이다. _202쪽 조직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객관화의 동화될 때가 많다. 타인의 생각을 여과 없이 받아들인 다거나, 위계에 눌러 No라는 말을 하지 못하고 내 생각을 쉽게 포기하곤 한다. 모난 돌이 되면 피곤하기 때문에 철학과 가치를 내려놓은 적도 많다. 이런 내려놓음으로 인해 조직은 겉으로 보기에 평화로웠는지 모르지만 조직 내면에 숨겨진 반작용과 불온한 생각들은 없어지지 않았다. 프랑스의 철학자 하이데거가 악의 평범성을 언급했던 한나 아렌트에게 생각한다는 것은 외로운 일이며, 인생에서 어려운 일 세 가지를 생각, 사랑, 자기 변화라고 저자는 소개했다. 하이데거의 생각에 동의가 된다. 모두가 어려운 일이다. 특히 사유하기와 그를 통한 인간의 변화는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어렵기에 오히려 가치 있는 일이다. 사유한다는 것은 진보를 위한 발걸음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자기변화다 그런 면에서 하이데거의 언설은 유의미하다. <정희진처럼 읽기>에서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치열함’. 생각하기, 통념에 딴죽 걸기, 주류에 대항하기, 주관을 거침없이 피력하기. 나는 이 모든 단어들이 저자의 치열함에서 비롯됐음을 깨달았다. 젠더 감수성과 여성주의가 저자의 글에서 선명하게 보인다. 나쁘지 않다. 기회의 평등 이전에 의지의 평등이 허락되지 않는 가부장제 사회에 돌직구를 서슴없이 날린다. 비록 남성과 여성을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분법적 프레임으로 엮어냈지만 아직도 사회 전반에 흐르는 남성 쇼비니즘을 감안하면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개인의 철학과 가치 신념은 환경, 경험, 독서 등을 통해 형성된다. 경험은 타인과 소통하는 관계를 통해 이루어지지만, 실제 타자를 만나지 않고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간접 경험은 독서를 통해 가능하다. 저자의 엄청난 독서력이 그의 현재 모습을 만들었으리라. 독서는 몸 전체가 책을 통과하는 활동이라고 했다. 책을 읽기 전과 읽은 후의 모습이 바뀌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텍스트와 스토리가 함께 융합하여 독자에게 유의미한 인사이트를 준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있겠는가? <책 속으로> 약자는 자신이 약자라는 인식과 더불어 자각이 다른 앎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것이 약자의 인식론적 특권이다. 강자는 자기 생각을 약자에게 투사하지만, 똑똑한 약자는 두 가지 이상의 시각에서 자신과 상대방을 모두 파악한다. _85쪽 평화에 대한 욕망은 반 평화다. 평화를 둘러싼 경합이 평화다. 모든 이가 사이좋은 상태는 존재할 수 없다. 이 불가능한 상태를 약자가 인내함으로써 가능한 것처럼 착각하게 하는 것이 평화다. 강자의 양보로 평화가 실현된 경우는 없다. _147쪽 기존 규범을 문제 삼지 않고 그 안에서 약자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이중 메시지에 자발적으로 수갑을 채우는 행위다. 사회가 당연히 하는 사유의 경로를 추적하는 것이 지성이고 운동이다. _195쪽 한때 나를 구원했던 것이 나를 억합하는 시기가 온다. 나의 성장 때문일 수도 있고 대상의 변질이나 상실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든 나는 그것들과 헤어지거나 최소한 거리를 두어야 생존할 수 있다. _2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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