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건숙 〈책 사랑꾼 그림책에서 무엇을 보았나?〉 - 사랑, 그 아름다운 이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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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사랑꾼 그림책에서 무엇을 보았나?>
여성학자 정희진은 독서는 몸 전체가 책을 통과하는 것이라고 했다. 텍스트 이전에도 자신이 존재하고 이후에도 존재한다고 했다. 물론 전과 후에 독서가의 모습이 바뀌어 있음을 의미한다. 책은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며 자신을 변화 시킬 수 있는 최고의 통로라는 말이다. 격하게 공감하는 바다. 책에는 타인의 삶이 녹아 있다. 저자의 생각, 경험이 오롯이 책이라는 용광로 안에 들어 있다. 그 안을 들여다보면 타인이라는 거울을 통해 자신을 비추어 볼 수 있다. 그래서 책은 고마운 존재다. 그림도 나름의 텍스트를 가지고 있다. 더구나 글과 그림이 어우러져 있다면 텍스트의 입체감이 독자를 더욱 자극한다. 책 사랑꾼 김 건숙 작가가 이 번에는 그림책으로 독자에게 다가왔다. 다양한 서사를 갖춘 그림책으로 현실을 투영하며, 작가의 방식으로 변주하고 때론 주인공과 실존의 인물을 대비시켜 서사를 만들어 간다. 무엇보다 <책 사랑꾼 그림책에서 무엇을 보았나?>는 작가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풀어놨다는 점에서 친근감이 있다. 남편과의 만남, 결혼 후에 겪었던 질곡과 극복의 과정은 잔잔한 감동을 준다. 타 블로그 이웃과의 만남과 교류를 통해 또 다른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며 삶의 역동성과 다양성을 경험하게 된다. 무엇보다 작가가 직접 편지로 대화한 장형숙 할머니의 편지 쓰기 일화는 울림의 깊이를 더한다. 아픔을 겪고 있는 자들에게 하루 평균 열 통의 편지를 쓴다는 장형숙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이 사회는 세대를 초월하여 소수의 생각하는 지성이 있기 때문에 불의가 판을 쳐도 완전히 망가지지 않는다는 확신이 생긴다. 저자가 소개한 장형숙 할머니의 존재는 메마른 땅의 단비와 같다.
장형숙 할머니를 소개하며 저자는 세월호 사건에 대해서도 언급을 했다. 세월호 사건은 나에게도 충격이었고 시간이 많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진실은 수면 아래 잠자고 있다는 사실에 분노하게 된다. 언제까지 진실을 묻어 둘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국가가 저지른 폭력 앞에 무력한 개인들은 그저 한탄만 해야 하는 것인지… 저자와 인연이 되어 만난 블로그 이웃 등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의 면면을 보면 다양하다. 책 읽는 구둣방 주인, 화가, 규방 공예가… 모든 인간은 다 각자의 서사가 있다. 삶을 살아가는 방식은 비록 제각각이지만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 책으로 구두를 닦는다는 K 씨에게 책은 K 씨의 자존감을 세워준 고마운 친구였을 것이다. 도쿄에 산다는 교포 저자 양은심작가의 옥상 정원 이야기도 눈에 들어온다. 책을 쓰고, 시를 짓는 양은심작가가 자연을 문학으로 연결 짓는 재치에 웃음이 나온다.
책을 읽다 보니 반가운 이름이 눈에 띈다. 시바타 도요. 얼마 전 상사로부터 시바타 도요의 시집<약해지지 마>를 선물 받았다. 고령의 나이에 시를 쓰며 살아가는 그의 모습 속에서 인생 후반에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힌트를 얻기도 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도 김 건숙 작가처럼 하고 싶은 게 참 많았던 것 같다. 그는 진로코칭에서부터 판소리, 심리학 사진 등 한 분야도 제대로 하기 힘든데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갖고 전문성을 키운 듯하다. 그런 열정이 작가의 길로 인도하는 자양분이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고 싶다고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진정 원하는 일이 있다면 도전하는 것이 후회하지 않는 길이다. 나는 원함을 실행으로 옮기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이리저리 재보고,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기면 포기한다. 남의 시선, 시간 부족 등을 변명으로 삼기도 한다. 어느 개그맨의 어록,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진짜 늦은 거’라는 농담도 진지하게 들린다. 하지만 나이 든 분들의 도전기를 접하고 인생이 끝나는 날까지 뭔가 해보려는 노력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님을, 시도와 노력 자체로 의미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블로그에 죽음에 대해 글을 쓰곤 했는데 김 작가도 책에서 죽음을 언급했다. 퀴블러 로스의 <죽음과 죽어감>과 헬란 라슨의 그림책 <나는 죽음이에요>, 역시 마거릿 와일드의 그림책<할머니가 남긴 선물> 을 소개하며 죽음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는지에 대해 그의 생각을 풀어냈다. 죽음을 공부하고 준비하는 삶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한다.
죽음을 대하는 태도는 어쩌면 그렇게 엄숙할 필요는 없는듯하다. 일상이 늘 죽음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저자의 말처럼 지금 잘 사는 것이 잘 죽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죽음을 생각하면 삶을 허투루 살 수 있겠는가. 누군가는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면 주변이 변화되고 결국 세상이 바뀐다고 말하지만 잘 모르겠다. 세상을 바꾼다는 것의 의미를 잘 모르겠다. 어떤 의미에서 희망 고문처럼 들린다. 악인은 여전히 사회에 만연되어 있고, 불평등은 늘 존재하고 있다. 법을 바꾸고 제도를 정비해도 여전히 인간이 꿈꾸는 낙원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세상에 의해 내가 흔들리고 오염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맞을 듯하다. 세상의 변화라는 이상적인 꿈보다는 흔들리지 않는 나를 유지하는 노력이 더 값어치 있다. 다만 세상을 바꿀 목적이 아닌 나를 지키고 사랑하기 위해 타인에게 친절하고 타인의 행복을 위해 도와주는 삶은 분명 의미 있지 않겠는가.
저자가 소개한 법정 스님의 말처럼 타인의 행복을 위하면 나의 삶도 좀 더 행복해진다는 확신이 있다. 그런 삶을 살다간 사람들이 분명 있기 때문이다. 결국 사랑이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게 된다. 의식이 있는 사람은 타인의 삶을 통해 자신을 반추하고 생각하게 된다. 늘 일상 속에서 부대끼고 교류하는 사람으로부터, 책으로부터, 얼굴을 볼 수 없지만 웹상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소통으로부터 뭔가를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게 된다. 저자가 소개한 그림책을 통해 바라본 세상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도 귀했지만 그림책을 통해 저자가 경험한 삶과 생각의 지평을 목격하게 돼서 좋았다. 자신의 삶에 대해 진솔하게 독자와 나누고, 살아온 삶의 동선을 조금씩 조금씩 풀어내는 가운데 나의 시간도 함께 돌아 보았다. 의미 있는 독서 여행이었다.  <책 사랑꾼 그림책에서 무얼 보았나?> / 김건숙 / '19.5.1 / East-H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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