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jrigjwwe9r0UNIMO_MULTIBOARD:Brd_Contents 작가 : 김형경 출판 : 푸른숲 발매 : 2009.11.15
이별풍경
인간은 살다 보면 수 없이 많은 이별을 경험한다. 이별의 대상은 어떤 사물일 수도, 인간일 수도, 아니면 집에서 키우던 반려 동물이 될 수도 있다. 대부분의 이별에는 슬픔이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사람마다 슬픔의 깊이와 슬픔을 표현해 내는 애도의 방식은 다르겠지만 이별과 이별로 인한 슬픔과 애도는 모두에게 일어나는 일상의 일이다.
김형경 작가의 애도 심리 에세이 〈좋은 이별〉, 애도심리라는 부제가 무척이나 낯설게 느껴지고 생소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책을 읽어 내려가는 순간, 낯선 느낌은 어디에도 없다. 익숙한 연인들의 헤어짐, 부모와 이 땅에서의 영원한 이별, 아끼던 강아지의 죽음 등 다양한 형태의 이별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과, 책의 제목처럼 〈좋은 이별〉이란 어떤 이별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저자 자신에 대한 고백도 책에 담겨져 있다. 아버지의 죽음 뒤에 따라온 상실감과, 자신에게 오이디푸스적인 문제가 있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그 때를 회상하며 아버지와의 이별을 심리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어려웠음을 고백한다. 아마도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도 자신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심리적 문제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과연 좋은 이별이란 어떤 것일까? 제대로 된 애도를 통해 일상의 삶으로 다시 되돌아 오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일상의 삶으로 되돌아 온다는 것’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상태로 된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너무 멀쩡한 것이 이상한 일이다. 이별이라는 하나의 사건은 분명히 발생한 것이고, 발생한 사건을 되돌릴 수 없기에 과거의 기억이 남아 자신에게 영향을 줄 수도 있다. 그 영향이라는 것이 자신을 성숙 하게하고, 새롭게 거듭나게 하는 순기능으로 작동한다면 이별이라는 사건은 장기적으로 볼 때 긍정적인 측면을 분명히 가지고 있다. 다만 전제는 ‘충분한 애도’ 가 있었냐는 것이다.
애도 작업은 내면에서 작동하는 낡은 삶의 플롯, 어린 시절에 머물고 있는 내면의 자기를 함께 떠나 보내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치유와 성장이 자연스럽게 뒤따른다._44쪽
분명한 슬픔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별에 대한 애도 없이 현실을 회피하거나, 그저 스쳐 지나간 바람처럼 아무 일도 없이 생각한다면 결코 좋은 이별이라고 할 수 없다. 애도의 5단계 이론을 제안하여 유명해진 심리학자 엘리자베스 퀴블러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애도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퀴블러는 어릴 적에 키우던 블래키라는 토끼가 저녁식탁에 올라왔을 때, 슬픔을 표현하지 않았고 그 이후로 블래키나 다른 어떤 이를 위해서도 40년 동안 울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40년 동안 슬픔을 표현하지 않은 대가를 다른 상황에서 치르게 되는데, 그 동안 쌓여왔던 억눌린 분노와 슬픔이 한꺼번에 터졌다고 술회한다. 애도를 해야 할 때 충분히 애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도 그런 사례는 많이 있다. 배우자와 사별한 중년의 부인이 슬픔을 억누르고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지내다가 결국은 자살을 선택하거나,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경우도 이렇게 애도의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한국사회가 슬픔을 표출하는 것에 대한 시각이 부정적이라는 측면도 일반 대중의 애도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없도록 만드는 원인이기도 하다.
좋은 이별을 위해서는 외부의 도움도 필요하고, 상실의 현실을 받아들이는 마음을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하단다. 분노의 감정이 보살펴 지지 않은 채 방치 될 경우 증오로 바뀔 위험성이 있어서, 슬퍼하기와 슬픔 속에 일정시간 머무를 수 있어야 한다.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지내느냐고 인사할 때는 솔직하게 감정을 표출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소위 쿨(Cool) 하다는 것이 자신의 본 모습이 아닌 작위적인 노력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면 결국 자신을 더욱 힘들게 할 것이다. 아프면 아프다고 이야기 할 수 있어야지, 쿨하기 위해 괜찮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스스로를 더 깊은 슬픔의 억압이라는 구덩이로 집어 넣는 것이다.
저자는 애도작업을 위해 필요한 행위에 대해서도 조언한다. 몸을 안아주기, 잠을 푹 자기, 물을 많이 마시기, 충분하게 영양을 섭취하기 등 육신의 몸을 보하는 일이 필요하고, 슬픔으로 인해 발생하는 각종 질환, 저체중, 과체중, 알러지 등은 병원을 찾아서 치료하고 건강을 먼저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현실적 제안들도 무시하지 않는다. 몸과 마음은 떨어질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임을 감안할 때 애도의 과정에서 자신의 육신을 챙기는 것도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주변에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을 보면 그들 나름대로의 각양각색의 과거를 가지고 있다. 깊은 대화를 하다 보면 과거에 그들이 가지고 있던 수 많은 상처의 경험을 알게 되고, 현재 자신의 행동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도 더불어 이해 하게된다.. 2차 세계대전의 장본인 히틀러가 과거에 받았던 학대의 상처, 빌 클린턴과 르윈스키의 부적절한 관계에 원인을 제공한 그들 과거의 기억들을 보면 공통점들을 찾을 수 있다. 과거의 상처를 제대로 치유하지 못하고, 성인이 되어 안 좋은 상처의 결과를 양산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적절한 애도를 경험하는 것은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일일까? 어쩌면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상처받은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불안정한 인간일 수 있다. 그 불안정한 흔들림을 조금이라도 정지 시키기 위해 애도의 순간과 마주했을 때 거부하지 않고 애도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좋은 이별〉 / 김형경 / P263 / - 출처 '12.10.21 by East-h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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