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통신사가 자체 기획한 보급형 스마트폰이 잇따라 흥행 돌풍을 일으키면서 과거 삼성전자와 애플, LG전자가 주도하던 국내 스마트폰 시장의 판도가 변화할지 주목된다.

SK텔레콤은 이달 19일부터 21일까지 진행한 두 번째 자체 기획 스마트폰 ‘쏠(Sol)’의 예약 가입에 1만명 가량이 몰렸다고 22일 밝혔다. 이는 지난해 히트작 ‘루나’ 예약 가입자의 두배 수준이다. 

통신업계 한 고위 관계자는 “SK텔레콤은 전작(前作) 루나의 성공을 통해 기존 휴대전화 제조사들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수 있다는 결과를 얻었다”면서 “앞으로 이동통신사들이 자체 기획한 휴대전화가 시장에 더 많이 쏟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SK텔레콤이 22일 출시한 자체 기획 스마트폰 ‘쏠’ / SK텔레콤 제공

◆ 통신사가 기획 단계부터 주도 

이날 공식 출시된 쏠은 SK텔레콤(017670)과 중국 TCL-알카텔이 힘을 합쳐 만든 보급형 스마트폰이다. SK텔레콤이 기획, 마케팅, 판매 등을 담당하고,TCL-알카텔이 단말기 제조를 맡았다. 중국 가전업체인 TCL은 2004년 프랑스 알카텔의 모바일 부문을 인수하고 스마트폰 사업에 진출했다.

 쏠 기획 당시 SK텔레콤은 소비자 설문조사를 실시해 스마트폰 이용자 상당수가 미디어 콘텐츠를 소비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이를 위해 외장배터리, 이어폰, 메모리카드 등을 별도로 구매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SK텔레콤은 이런 성향의 소비자를 공략하기 위해 해외 오디오 업체 ‘하만’의 JBL이어폰과 1만400밀리암페어아워(mAh) 용량의 외장배터리, 32기가바이트(GB) 용량의 외장 SD카드를 쏠 구매자에게 제공하기로 했다.

 또 쏠 자체에도 퀄컴의 옥타코어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칩셋을 탑재해 동영상, 음악 등 미디어 콘텐츠 실행 시 전력 효율을 개선했다. 기기 전면 상단과 하단에는 2개의 스피커를 장착해 사운드 출력을 높였다. 그럼에도 제품 출고가는 39만9300원로 저렴하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잠재 구매자의 성향을 미리 파악한 다음 맞춤형 스마트폰을 개발할 수 있다는 점이 통신사 자체 기획폰의 가장 큰 장점”이라며 “휴대폰 제조사가 내놓는 스마트폰은 대중성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어 특정 수요층을 공략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SK텔레콤이 지난해 9월 출시한 자체 기획 스마트폰 ‘루나’ / SK텔레콤 제공

통신사가 스마트폰 개발의 기획 단계부터 주도하는 방식은 지난해 루나가 크게 성공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당시 SK텔레콤은 국내 단말기 제조사인 TG앤컴퍼니와 공동으로 루나를 기획했고 애플 아이폰을 외주 생산하는 대만 폭스콘에 제조를 맡겼다. TG앤컴퍼니는 삼보컴퓨터를 창업한 이용태 회장의 둘째 아들인 이홍선 대표가 2011년 설립한 회사다. 

지난해 9월 4일 출시된 루나는 판매 3주 만에 유통망에서 재고가 전량 소진되는 등 히트를 쳤다. 2015년 12월 말일 기준으로 누적 판매량은 15만대를 넘어섰다. 프리미엄 스마트폰과 비슷한 사양을 갖추고도 가격이 44만9900원에 불과하다는 점이 흥행한 이유였다.

 김성수 SK텔레콤 스마트 디바이스 본부장은 “자체 기획폰의 돌풍은 실속형 단말기가 소비자에게 인정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단지 가격만 싼 제품보다는 사용자가 가장 필요로 하는 핵심 기능이 잘 구현된 제품을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 “삼성·LG 의존도 낮추고 제2의 루나, 쏠 준비한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동통신사들이 앞으로 자체 기획 스마트폰을 더 많이 선보일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삼성전자(005930)와 애플, LG전자(066570)등 스마트폰 빅(big) 제조사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수 있고 단말기 공급에 관한 협상 테이블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SK텔레콤은 루나를 출시할 때 전략판매 상품으로 지정하고 대형 대리점들에 최우선 판매를 지시했다. 루나 구매자에게는 보조배터리, 구글 플레이스토어 할인권 등 사은품도 제공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휴대폰 제조사들이 이런 특혜를 보고도 별 말 못한 이유는 루나가 통신사 자체 기획폰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내 한 이동통신 판매점의 모습 / 조선일보DB

아직 자체 기획 스마트폰을 출시하지 않은 KT(030200)와 LG유플러스도 전용폰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방식으로 기존 제조사와의 협상력을 높이고 있다. 최근 KT는 삼성전자의 ‘갤럭시J7’을 전용폰으로 출시했다. 이 제품은 출시 한 달 만에 5만대 이상 팔렸다. 

LG유플러스(032640)는 중국 화웨이와 손을 잡고 ‘Y6’를 국내에 들여왔다. 출고가가 15만4000원에 불과한 Y6는 국내 스마트폰 시장에서 2만대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 중이다.

 국내 이동통신사의 한 관계자는 “스마트폰 제조사와 출시일, 초기 물량, 사은품 등에 관한 협상을 벌일 때 아무래도 이동통신 3사가 공동 출시하는 제품보다는 전용폰이 더 수월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전준범 기자 bbeom@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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